냉장고에 계란을 넣어두고 "이거 아직 먹어도 되나?" 고민한 적 있으시죠. 계란은 껍데기에 눈에 보이지 않는 미세한 숨구멍(기공)이 7천~1만 개나 뚫려 있는 식재료입니다. 이 구멍으로 수분과 이산화탄소가 빠져나가고, 반대로 냄새와 세균이 들어옵니다. 그래서 계란 보관은 "온도를 일정하게 유지하고, 껍데기의 보호막을 지키는 것" 이 두 가지가 전부라고 해도 됩니다. 이 원리만 알면 아래 방법들이 왜 그런지 자연스럽게 이해가 되실 거예요.
첫 번째 원칙은 사 오자마자 씻지 않는 것입니다. 계란 껍데기 표면에는 큐티클(외피)이라는 얇은 천연 보호막이 덮여 있어서 세균 침입을 막아줍니다. 물로 씻으면 이 막이 벗겨지고, 젖은 껍데기의 기공으로 오히려 세균이 빨려 들어갑니다. 흙이나 이물질이 묻어 있다면 마른 키친타월이나 마른 행주로 살살 문질러 닦아내고, 정말 더러운 계란만 요리 직전에 흐르는 물에 씻어 바로 사용하세요. 참고로 마트에서 파는 계란은 대부분 세척·건조 후 포장된 상태라 그냥 넣으면 됩니다.
두 번째 원칙은 뾰족한 쪽을 아래로, 둥근 쪽을 위로 두는 것입니다. 계란의 둥근 쪽에는 공기주머니(기실)가 있는데, 이 부분이 위로 향해야 노른자가 중앙에 안정적으로 떠 있게 되고 기실이 노른자와 껍데기 사이의 완충 역할을 합니다. 반대로 두면 노른자가 껍데기 쪽으로 붙으면서 세균에 노출되기 쉽고, 삶았을 때 노른자가 한쪽으로 치우쳐 모양도 예쁘지 않습니다. 마트에서 파는 계란판이 이미 뾰족한 쪽이 아래로 담겨 있으니, 그 상태 그대로 냉장고에 넣는 게 가장 편한 방법입니다.
세 번째 원칙은 냉장고 문 쪽 계란 칸을 쓰지 않는 것입니다. 많은 냉장고가 문 안쪽에 계란 전용 홈을 만들어 두었지만, 문은 여닫을 때마다 온도가 5도 이상 오르내리고 진동도 가장 심한 위치입니다. 온도가 오르락내리락하면 껍데기 표면에 결로가 생기고, 그 물기를 타고 세균이 들어갑니다. 계란은 냉장실 안쪽 선반, 가능하면 온도 변화가 적은 중간 칸에 두시는 게 가장 좋습니다. 적정 온도는 0~5도이며, 김치나 젓갈처럼 냄새가 강한 음식 옆은 피하세요. 계란은 냄새를 그대로 흡수합니다.
네 번째 원칙은 산 그대로의 포장 용기(계란판)에 담아 두는 것입니다. 종이 계란판은 습도 조절과 충격 완화, 냄새 차단을 동시에 해주는 꽤 훌륭한 보관 용기입니다. 예쁜 플라스틱 계란 케이스로 옮겨 담는 분들이 많은데, 옮기는 과정에서 껍데기에 미세한 균열이 생기고 보호막이 손상됩니다. 굳이 옮긴다면 뚜껑이 있는 밀폐용기에 뾰족한 쪽을 아래로 세워 담고, 구입일이나 산란일자를 매직으로 적어두세요. 계란 껍데기에 찍힌 숫자 앞 네 자리가 산란일자(월일)입니다.
보관 기간은 냉장 상태에서 산란일로부터 3~5주 정도가 일반적인 기준입니다. 다만 여름철에 상온에 오래 방치된 계란이라면 훨씬 짧아집니다. 유통기한이 지났더라도 신선도는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다. 가장 쉬운 방법은 물컵 테스트입니다. 깊은 컵에 물을 담고 계란을 넣어보세요. 바닥에 완전히 옆으로 누워 가라앉으면 아주 신선한 계란, 뾰족한 쪽을 아래로 세워 서면 익혀 먹는 게 좋은 상태, 물 위로 완전히 떠오르면 내부에서 부패 가스가 차 있다는 뜻이니 버려야 합니다. 깨뜨렸을 때 노른자가 볼록하게 솟아 있고 흰자가 두 겹으로 뚜렷하게 구분되면 신선한 것이고, 노른자가 납작하게 퍼지고 흰자가 물처럼 흐르면 오래된 계란입니다. 비린내나 유황 냄새가 나면 바로 버리세요.
용도별 보관도 알아두면 편합니다. 삶은 계란은 오히려 생계란보다 보관 기간이 짧습니다. 삶는 과정에서 보호막이 완전히 사라지기 때문인데, 껍데기를 까지 않은 상태로 냉장 보관하면 5~7일, 껍데기를 깐 상태라면 2~3일 안에 먹는 것이 좋습니다. 껍데기를 깐 삶은 계란은 마른 상태로 두면 겉이 딱딱해지니 밀폐용기에 넣고 물을 살짝 담아 잠기게 보관하면 촉촉함이 유지됩니다. 실수로 깨진 생계란은 껍데기를 제거하고 밀폐용기에 담아 냉장에서 1~2일 내에 반드시 익혀서 사용하세요.
남은 계란을 오래 두려면 냉동도 방법입니다. 껍데기째 냉동하면 부피가 늘어 터지니, 반드시 껍데기를 깨서 얼려야 합니다. 흰자와 노른자를 함께 풀어 실리콘 얼음틀이나 지퍼백에 한 개 분량씩 나눠 담아 냉동하면 한 달 정도 보관 가능하고, 냉장실에서 해동해 스크램블이나 부침 요리에 쓰면 됩니다. 흰자만 남았을 때도 같은 방식으로 얼려두면 머랭이나 튀김옷에 쓸 수 있습니다. 노른자만 냉동하면 젤리처럼 굳는 성질이 있어, 설탕이나 소금을 아주 조금 섞어 얼리면 식감 변화를 줄일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흔한 실수 몇 가지만 짚고 갈게요. 장을 볼 때 계란은 가장 마지막에 담고 집에 오면 가장 먼저 냉장고에 넣으세요. 상온에 두 시간 이상 두면 신선도가 급격히 떨어집니다. 또 한 번 냉장 보관한 계란을 다시 상온에 꺼내 두는 것도 피해야 합니다. 결로가 생겨 세균이 침투하기 쉬워집니다. 그리고 새로 산 계란을 앞에 두지 말고, 기존 계란을 앞쪽으로 당겨 먼저 쓰는 선입선출을 습관화하면 버리는 계란이 확 줄어듭니다. 계란 보관은 씻지 않기, 뾰족한 쪽 아래로, 냉장실 안쪽 선반, 이 세 가지만 기억하시면 충분합니다.